이화의대·이화의료원 개교기념 학술 심포지엄:
138년의 빛, 이화의학교육의 오늘과 내일

2025년도 이화의대·이화의료원 개교기념 학술 심포지엄 ‘138년의 빛, 이화의학교육의 오늘과 내일’ 행사가 6월 19일, 이화여대 ECC 컨퍼런스홀에서 개최되었다. 본 행사는 개회사, 환영사 및 축사를 시작으로 1부에서는 ‘이화여성 의학교육의 역사적 의의’에 대하여, 2부에서는 ‘여성 의학교육의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각 연사들의 강의 및 패널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이향숙 이화여대 총장, 유경하 의료원장, 피상순 동창회장, 강덕희 학장, 김관창 기획부장 외 이화의대 교수진과 본교 교수진, 동창회 임원진, 의대 학생들이 참석하여 이화의대의 정체성을 다시 돌아보며 이화의학교육의 미래를 논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먼저 김관창 이화의대 기획부장의 기도문 낭독을 시작으로 강덕희 이화의대 학장의 환영사가 이어졌다. ‘이화에서 시작된 의학교육 138년의 여정을 돌아보고 기쁨을 나누는 뜻 깊은 자리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1886년 이화학당의 설립으로 시작된 여성교육이 1887년 메리스크랜튼 여사가 세운 보구녀관을 통해 여성에게 돌봄과 치유의 기회를 제공했듯, 시대가 바뀌어도 우리 이화의 정신은 동일하다’며 ‘특히 이 자리를 함께한 학생 여러분은 그 숭고한 유산을 이어갈 미래이며, 새로운 이화의 주체로 우뚝 서길 바란다’고 당부를 남겼다. 유경하 의료원장 역시 환영사를 시작하며 ’보구녀관은 최초의 여성전문병원으로 여성의사와 간호사를 배출해냈으며 동대문부인병원의 전신이 되었다. 오늘 의학교육 80주년의 의미를 기념하면서도 이에 국한되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히고자 한다. 초기 WFMS의 역할, 당시 여의사들의 수련현장이었던 동대문병원에 대한 논의가 있을 예정이니 찬란한 역사속에서 오늘의 심포지엄을 통해 이화의학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격려하였다. 다음은 이향숙 이화여대 총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아름다운 이화 본교캠퍼스에서 열리는 심포지움이 너무나 반갑고, 우리나라 여성의학교육의 역사와 미래를 논하는 귀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메리스크랜튼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보구녀관은 최초의 여성병원으로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에게 돌봄과 치료를 제공하였으며 한국의학교육의 첫걸음이 되었다. 이로부터 138년이 지난 오늘, 수많은 여성의료인 배출과 더불어 여성의학교육의 중심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할 뜻깊은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하였다.

마지막으로 피상순 이화의대 동창회장은 ‘이화의학교육은 단순히 지식과 교육 전수를 넘어 여성의료의 산실이다. 1887년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의 첫 발자취 이후 동대문부인병원, 이대부속 동대문병원, 목동병원, 이대서울병원까지

나아가며 한국의료의 중심으로 우뚝섰다.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진정한 의사를 배출해내겠다는 처음의 그 숭고한 소명을 이어받아 오늘날 이화의대 졸업생들은 전국, 세계 각지에서 실천, 진료실에서 따듯한 손길, 연구실에서는 활발한 연구를, 소외된 사각지대에서는 나눔의 정신을 펼치고 있다. 선배들의 노고를 기리면서 이화의 정체성과 비젼을 함께 공유하고 나아갈 미래를 다짐하는 소중한 자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축사를 전하였다.

1부는 ‘이화 여성의학교육의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유경하 의료원장이 좌장을 맡아 김영수(연세대학교 인문사회의학교실 의사학과), 최은경(경북의대 의료인문학교실), 이방원(이화여대 사학과) 교수의 강의 및 패널토론을 진행하였다.

먼저, 김영수 교수는 ‘WFMS 여성의학교육의 의의’에 대한 주제로, WFMS(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의 역사와 한국 선교, WFMS의 여자의학교육사업 전략, 1910-20년대 여자의학교육을 둘러싼 현실적 문제, WFMS의 여자의학교육의 의의와 유산에 대하여 다루었다. WFMS에서는 보구녀관 설립 초기부터 의료보조훈련반을 도입하며 여성이 의학교육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1912년 광혜녀원 여성의학반 개설로 이어졌다. 초기에 WFMS가 활동했던 인도의 의료선교와 당시 식민지 통치하의 조선의 상황을 비교하며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1910-1920년대 재정적 문제와 더불어 의료인력의 제도화(선교병원의 확대 및 세브란스 연합의학교 졸업생 배출)로 인해 여성의료선교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동대문부인병원의 여성을 위한 선교병원으로서 상징성이 대두되었으며 영유아 건강 및 산과에 대한 사회적 책임 역시 다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의학교와 선교병원의 분리를 통해 실리적 관점을 고수하면서도 동대문부인병원이 당시 여의사들의 수련병원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해방 이후에 이화여대 부속병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어 최은경 교수는 ‘일제강점기 여성의료에서 동대문 부인병원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였다. 동대문부인병원의 설립, 의사 합류경로, 다른 직군(간호사,약제과,치과), 동대문부인병원 사업, 경성여자의학강습소에 끼친 영향 등에 대하여 폭넓게 다루고자 하였다.

다음으로 최은경 교수의 발표를 통해 '여성 의학 수련에서 동대문부인병원의 역할'을 알아보았다. 동대문부인병원(릴리안 해리스기념병원)은 당시 WFMS의 핵심 의료기관으로 1904년 8개월 동안 일곱개의 클리닉이 개설되어 4,897명을 진료하는 등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고 1912년 준공 후에도 진료와 간호사교육을 주도적으로 맡아서 진행하며, 한국인 여의사들의 필수 수련 코스가 되었다. 당시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보며 25년 이상 동대문병원을 지킨 안수경 선생(훗날 동대문부인병원장 역임)을 비롯한 국내 여의사들과 해외파 여의사의 합류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며 당시 여의사들의 치열했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이후 로제타홀의 말년에 ‘조선에 여자의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를 구체화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타 직역으로는, 이들을 도왔던 최초의 여성간호사, 약제사, 치과의사들에 대해서도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진료 외에도, 영유아 복지사업과 태화여자관, 경성탁아소 등을 추진하며 사회전반적으로 소외된 여성을 위해 힘썼던 당시 모습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이방원교수는 ‘여성보건의료인 양성을 위한 ‘대학교육’의 시작(1945-1960)’을 주제로 일제시기 이화여전의 ‘종합대학 설립과 여성의료인 양성’에 대한 구상, 해방 이후 이화여대 여성의학교육의 시작과 고난(1945~1953), 1953년 환도와 의학교육정비에 대하여 관련 연차보고서, 학계 역사서, 주요 신문 등의 다양한 사료를 토대로 면밀하게 분석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는 1933년 2년제의 Pre-medical 초기 구상 이후에 1940년 종합대학 구상과 동시에 의학과 신설을 구상하였으며, 조선 총독부 하에서 후생과로서 의과를 포함하고자 하였다. 해방 이후 경성여의전을 제외하고는 여성의학교육기관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화여자대학교는 종합대학 설립을 인가받게 되었다. 종합대학으로 승격된 이화여대는 행림원(의학과)을 창설하여 세브란스 연합의학대학과의 협력을 유지하다가, 1948년에는 여학생 정원과 기회의 확보를 위해 이화의대를 독자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1953년 환도에는 의과대학 교육과정이 운영되며 교수진의 연구활동 외에도 매년 여름방학 경기도 일대에서 무의촌 진료봉사를 펼치게 되었고, 졸업 후 인턴·레지던트 수련제도와 함께 본과 학생들의 임상실습을 이대부속 신촌·동대문병원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유경하 좌장이 1938년 조선일보 기사를 토대로 ‘1928년 WFMS가 경성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설립하고, 동대문부인병원이 실습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했는데, 그렇다면 1928년~1938년에는 이화의대의 정체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하는 질문을 던졌다. 패널 답변으로 WFMS보다는 로제타 홀 개인의 업적이기 때문에 동대문부인병원과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위의 사료를 토대로 보았을 때는 이미 선교부와의 분리가 논의가 전부터 있었고, 1917년에 이미 보구녀관에서 여성의학교육의 의지를 표명하였고, 로제타 홀 주위의 의료진의 노력을 고려했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다음으로는 강덕희 학장이 ‘이화의학교육의 중요성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에 대해 ‘최초의 면허를 가진 의사가 누구인가에 대한 단편적인 시각보다는 연속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특히 세계적 관점에서 식민지 국가에서 여성의사 양성에 대한 논의가 흐름을 가지고 이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답변이 있었다. 추가적으로 ‘조선의 여성의료인의 역사가 이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경이롭고,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사실에 기반하여 의학, 약학, 간호학을 모두 보유하는 이화를 주축으로 모든 한국인 여성의학의 역사를 포용하며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첨언을 남겼다.

점심 식사 이후 이어진 2부 행사는 ‘여성 의학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진행됐다. 이화의대의 역사적 발자취를 되짚고, 한국과 미국의 여성 의학교육의 변화, 그리고 미래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먼저 심기남 교수(이화의대 보구녀관장)는 “이화 여성 의학교육의 개관: 1945~2025” 발표에서 해방 이후 이화의대의 설립과 발전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1946년 의학부 승격을 시작으로 1951년 첫 졸업생 배출, 1971년 의료원 발족, 1993년 목동병원 개원 등 주요 이정표를 짚으며, 마곡 캠퍼스 시대 개막과 함께 학생맞춤형 교육과정과 이화의학교육센터 설립 등 최근의 변화를 강조했다. 이화의대는 2025년 2월 기준 5,19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한국 여성 의학교육의 선도적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이어 공혜정 교수(건양의대 의료인문학교실)는 “현대 한국과 미국 여성 의학교육과 여성 의사, 1945~2020” 발표에서, 의학계의 ‘여성화’ 현상을 통계와 역사적 사례로 조명했다. 미국의 성평등 법안과 사회운동, 여성 의사 수 증가의 과정을 소개하며, “숫자가 만들어내는 연쇄 반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여전히 특정 전문 분야 집중, 성별 임금 격차, 리더십 불균형 등의 문제가 남아 있음을 지적하며, 여성 의사 롤모델과 조직화의 필요성을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정소미 교수(이화의대 의학교육센터)는 “이화 여성 의학교육의 미래”를 주제로, 이화의대의 교수개발, PBL·TBL 교육, 디지털 기반 학습 인프라 등을 소개하며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에는 여성 보건의료 리더 양성, 성차의학 및 여성건강 중심 교육, AI와 연계한 융합형 교육을 확대할 방침이다. 또한 임상실습 내실화와 자기주도학습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혁신에 주력할 계획임을 밝혔다.

연자들의 발표가 다 끝난 후 이어진 패널 토론 시간에는 참석자들이 세 명의 연자에게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고 소감을 공유했다. 김희경 약학대학장은 “최근 인증 기준 평가에서 ‘성과 기반 교육’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며 “약학 교육과의 연계와 학제 간 협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화로제타홀 측에서는 “학생들의 성적대별 학습 전략에 맞춘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며, “상위 그룹에는 초인지 학습, 중위 그룹에는 인지 전략, 하위 그룹에는 동기 부여 중심의 지원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행사에 참여한 한 동문은 “‘그린리본 프로젝트’ 멘토링이 여성의사로서의 진로와 삶을 구체적으로 고민할 기회를 제공했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이 밖에도 의료 현장에서 성차의학 연구와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과, 미래 교육 방향에 대한 다양한 제언이 이어졌다.

폐회사는 강덕희 이화의대 학장이 맡아 “과거의 성취를 바탕으로 오늘의 변화를 만들고, 내일의 혁신을 준비하는 이화의학교육이 되겠다”고 마무리하며 행사가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의학과 4학년 권나현 학생기자>, <의예과 1학년 김지윤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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