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의대 증원에 따른 의학교육의 질 저하,
무엇이 문제일까?
무분별한 의대 증원에 따른 의학교육의 질 저하, 무엇이 문제일까?
2024년 2월 22일 대통령실에서는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해도 의학교육의 질을 개선 가능하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외국 의과대학은 평균 정원이 100명 이상으로 우리나라 의과대학에 비해 교육 운영에 규모의 경제 효과가 있습니다(*의과대학 평균 정원: 독일 243명, 영국 221명, 미국 146명 ). 정부가 지난 해 말 각 의과대학 현장점검 등을 실시한 결과 2,000명 수준을 증원하더라도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 (출처: 담화문 일부 발췌)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 역시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갑자기 2배로 늘어난 인원을 누가 어떻게, 질 좋게 가르칠지 의료계가 우려한다”는 사회자의 질문에 “교수 수가 충분히 많다”고 강조하며 4월 1일 추가 담화문에서도 2023년을 기준으로, 의대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평균 1.6명으로, 증원을 해도 법정 기준인 교원 1인당 학생수 8명에 크게 못 미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2월부터 주요 의학단체들은 의대 정원 확대는 필연적으로 의료 교육의 질적 하락을 부를 것이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의학회는 “기초는 물론 임상의학 교수도 부족한 의과대학이 존재하는 상황에 정부 발표대로 (2000명의) 의대 증원이 이루어진다면 의학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한국의학한림원 역시 “불과 수개월 내 입학정원 증원에 필요한 교육자와 교육시설이 마련될 수 없다”고 발표했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전문의로 사회에 진출하기까지 10여 년이 걸리는 긴 교육훈련 기간과 급격한 인구감소를 고려하면 인력수급 정책은 20-3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학교육평가원 인증 미충족에 대한 우려
정부는 의료계의 우려와는 달리, 의대증원 발표 직후부터 교육부 추가 반박자료(04.24) 등을 통하여 교육의 질 저하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한국의학교육평가원(KIMEE, 이하 의평원)이 사용하는 ASK2026 인증 체계를 만족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국의 의학교육인증은 어떤 제도일까? 2000년대에는 의학교육 평가인증제도를 도입해 엄격한 관리 체계를 구축했고, 의평원이 이를 전담해 세계의학교육연맹의 국제 기준에 기초한 ASK2026 인증 체계를 사용한다. 이러한 객관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2024년 현재 한국의 40여개 대학은 세계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하지만 2025년부터 의대 증원으로 의학 교육의 질이 떨어지게 되면, 상당수의 학교들이 ASK2026을 통과하지 못할 위험(ASK2026 항목 중 교육과정, 교수진의 질, 교육 자원, 그리고 사회 기반 시설 등)을 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재학생은 국가 의사면허 시험 응시자격이 박탈되고, 학교 자체가 폐교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의평원의 입장이다.
또, 최근 열린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양은배 의평원 수석부원장은 지난 5월 초 내려온 교육부 공문 내용(과거에 없던 평가기구 재지정 조건 추가)을 공개하였는데, 이는 증원시 ASK2026기준이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반증으로 여겨진다. 4개월 넘게 이어지는 의료대란에, 6월 26일 개최된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에서도 의평원은 2000명 증원으로 인한 의학교육의 질저하에 대한 우려를 거듭 밝히며, “대학별 교육여건 평가시 의평원이 참여한 바도 없다”고 덧붙였다.
전임 교수 및 기초교수의 부족
정부에서 발표한 법정 기준인 교수 1명당 학생 8명이라는 기준은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기준으로, 의료선진국에 맞지 않는 기준이다. 미국의 경우 의대 전임교수 1인당 학생 비율은 0.45명으로 한국 1.6명의 1/3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전체 통계 역시 권역별로 비교하면 증원 이전에도 이미 호남권 의과대학의 전체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5.4명으로 수도권 의과대학의 1.6명에 비해 3배 이상의 격차가 벌어지며, 대학별로도 교수 1인당 학생수가 8.2명에서 0.6명까지 그 편차가 매우 크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는 반영되지 않았다.
혹자는 정부에서 ‘국립의대에 대해 올해 교원을 1000명 충원하겠다’는 발표처럼, ‘더 많은 재정을 들여서 뽑으면 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대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상교수의 경우 현재 대학병원에서 진료, 교육, 연구라는 세가지 직무를 수행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더 뽑을 수 있는 직역이 아니며, 무엇보다 당장 2025년까지 충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의학교육의 근간이 되는 기초의학의 경우 현 사태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신현영 의원실이 전국 34개 의대교실별 교수 현황을 분석한 결과, 기초의학담당 교수는 총 1131명으로 교수 1인당 학생수가 13.7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학교육 평가 ‘인증’ 기준에 따르면, 기초의학 전임교수는 25명 이상이어야 하지만, 기초 교수1인당 247명의 학생을 담당하고 있는 의과대학들도 존재한다.
양질의 의사 양성을 위한 인프라 확충(카데바 해부실습, 임상실습)과 교육방식의 문제
과거에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지식을 전달받는 형태의 교육이 주로 이루어졌다면, 지금은 실험이나 실습, PBL, CPX 및 OSCE 등 소수의 학생 그룹 교육을 통해 의사로서의 종합적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이 주가 된다.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져야만 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으며, 본교는 2022년 의학교육센터를 설립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학생의 잠재력과 다양성을 제고하기 위해 토론수업, 환자모의체험 등 여러 교육방식의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인프라의 확충 없는 의대 증원시, 통상적으로 의학과 1학년 때 이루어지는 해부학 카데바 실습조차 원활하지 못하리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며, 최근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5월 3일 공개된 대한의학회 영문학술지(JKMS)의 논문(A Brief Review of Anatomy Education in Korea, Encompassing Its Past, Present, and Future Direction, In-Beom Kim, Kyeung Min Joo, 2024 May 27;39(20):e159.)에서 연구진은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위치하고 있는 지역에 따라 3개의 그룹(서울=A, 경기도 및 인천=B, 수도권 이외 지방의대=C)으로 나누어 연구를 수행하였다. 의과대학당 해부학 교수는 A그룹(서울)이 5.3명으로 다른 그룹의 평균 3.3명보다 높게 나타났으며 해부학 교수 1명당 학생수는 평균24.4명(A그룹 20.9명, 그 외 26명)으로 영국의 해부학 교수 1인당 학생수인 13.3명과도 비교되는 수치이다. (Figure2)
(Figure2. Current student-to-professor ratio for anatomy education and student-to-cadaver ratio in Korea, A Brief Review of Anatomy Education in Korea, Encompassing Its Past, Present, and Future Direction, In-Beom Kim, Kyeung Min Joo, 2024 May 27;39(20):e159.)
연구진은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의대정원이 2000명 늘었을 때 추가적으로 필요한 교수와 카데바 숫자를 계산했다. 결과를 보면, 의대정원이 500명이 늘면 약 20명의 해부학 교수와 68구의 카데바가 추가로 필요하다. 1000명으로 늘리면 41명의 교수와 135구의 카데바, 2000명으로 늘리면 약 82명의 교수와 270구의 카데바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Table2). 연구진은 “학생수가 2000명 늘어난다면 전국 30명의 해부학 조교가 모두 교수로 승진하더라도 여전히 52명의 교수가 부족하고, 조교가 한 명도 남지 않는다”라며 “더 큰 문제는 현재 해부학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 중 약 23명이 5년 안에 은퇴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Table2. Numbers of professors and cadavers needed to maintain the current anatomy education environments for each possible increase in the number of medical college seats in Korea,, A Brief Review of Anatomy Education in Korea, Encompassing Its Past, Present, and Future Direction, In-Beom Kim, Kyeung Min Joo, 2024 May 27;39(20):e159.)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의학과 3, 4학년의 임상 실습은 어떠할까? 이에 대해 실습을 거쳤던 우리 이화의대 학생들의 생각을 일부 알아보았다. 의학과 4학년 학생 A는 “외과실습의 경우 수술을 여러 학생이 나눠서 참관하며 스크럽을 서게 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것 같다. 정신과 실습의 경우 4명씩 나누어 폐쇄병동에서 환자들과 같은 공간에 지내게 되는데, 학생수가 증가한다면 물리적으로 공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대면하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또, 의학과 4학년 학생 B는 “현재 마이너과 실습의 경우 8명이서 한 조가 되어 1주씩 진행하는 과들도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이비인후과의 경우 두경부외과, 이과, 비과로 나누어져 각각의 수술과 외래를 참관하게 되는데, 학생수가 더 늘어나게 된다면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경험하게 된다. 충분히 진로탐색을 못하는 것 이외에도, 학생 실습은 모든 과를 경험하고 배우는 마지막 기회인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일 것 같다”고 하였다.
<의학과 4학년 권나현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