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제도와 의료전달체계를 통해 알아본 필수의료
패키지란?

수가제도와 의료전달체계를 통해 알아본 필수의료패키지란?

필수의료패키지
2024년 2월 1일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 여덟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 이행을 위해 필요조건으로서 의사 수 확대와 충분조건으로서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패키지식 해법 마련을 위해 추진되었다. 이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지역완결 의료전달체계)’,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의 내용을 핵심 과제로 포함한다. 정부의 의료개혁 4대 과제의 내용에서는 필수의료를 ‘업무강도 높고 자원 소모 많으나 저평가된 항목’ 내지는 ‘수요가 적거나 일정하지 않은 분야’로 정의하고 있으며, 중증응급(외과계 고난도, 내과계 중증), 중증정신, 소아, 감염병 분야 의료 중심으로 정책 개편을 추진하고자 한다. 하지만,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에서 규정하고 있는 ‘필수의료’라는 말은 사실 공식적, 학문적으로 정의된 바가 없다. 의료 서비스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분야별, 환자별로 상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간과되었다. 물론 정부가 의료 예산을 배분하는 등의 의료 정책을 세울 때 필수의료의 정의가 효율적이라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26개의 진료 과목 중에서 이들의 필요성을 차등하는 명명이 과연 적절할까? 성형외과, 정형외과 등 일부 의료 서비스가 ‘필수의료’에 포함되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필수적이지 않다’라는 인식을 주는 것은 의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호도한다는 입장도 있다. 또한 ‘필수과에 대한 낙수효과’라는 표현에 드러난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보면, 필수의료라는 표현이 사명감을 가지고 의업에 임하고 있는 해당 진료 과목 의료진들에게 적절한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건보료 재정 악화와 수가제도 개편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건강보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재정 건전성이 중요한데,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 재정 추이 자료에 따르면 이미 적자가 시작되어, 2028년에는 적립금이 고갈될 예정으로 재정건전성이 좋지 않다. 건강보험 재정악화의 원인 중 하나는 낮은 국가지원금 비중에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료율은 7.09%, 건강보험 수입 중 국가지원금의 비중도 20%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2007~2021년에 정부가 지원한 건보 재정 지원은 14.6%로 법률에서 명시한 비중보다도 적다. 또한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빨라지고 있는 건강보험 지출 증가 속도도 재정악화를 야기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국회예산정책처의 <2023~2032 건강보험 재정전망> 에서 발표한 바와 같이, 2024년부터 적자가 지속돼 2028년에는 누적적자가 발생할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면 건강보험 보장성도 낮아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건강보험제도는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77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이후 낮은 보험료와 저수가를 유지하며 현재까지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다. 당시 책정된 진료 수가는 현재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업무 강도와 사법 부담이 크고 처우가 좋지 않은 진료과목들은 저수가로 인한 재정적 문제가 가중되어 점차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2월 2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 관련 브리핑>에서 ‘현재 행위별 수가제 및 수가 결정구조는 과잉진료를 유도하고, 필수의료 등 공급 부족 및 의료 질 저하가 유발되는 문제를 낳는다’고 의사를 내비쳤다. 결국 이는 정부가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의료전달체계문제를 지적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수가제도는 행위별 수가제와 포괄수가제를 중심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 행위, 약제, 치료 재료 등 의료 서비스에 따른 진료 수가를 더해 총액을 진료비로 지불하는 제도이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진료의 다양성이 반영될 수 있지만 정부가 주목하는 부분은 진료에 따라 의료진의 수입이 달라져 과잉 진료 및 청구오류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또한 위험도, 난이도, 시급성, 대기시간 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진료과목 및 분야별 보상 불균형 심화, 실손보험 기반의 고수익 저위험 비급여 팽창 등 영향으로 저수익 고위험인 필수의료 분야 기피가 고착화되어 필수의료 공백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해당 브리핑에서 ‘행위별 수가제의 틀을 넘어 양보다는 의료의 질과 성과에 따라 차등 보상하는 대안적인 지불제도를 점차 확대해 나가겠다’는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또한 ‘매년 예상 수입을 고려하여 지출목표를 제시하고, 지출목표 기준으로 수가와 진료량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보험재정 관리 방안을 보면, ‘대안적인 지불제도’가 모델로 삼고 있는 바는 미국식 지불제도 개편안인 대체지불 모델(APM)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안적 지불제도와 관련해서는, 브리핑에 앞선 2024년 1월 19일 정부 산하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도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위한 지불제도 : 묶음지불제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공개하여, 해외 묶음 지불제의 국내 도입 방안 의사를 공식적으로 문서화한 바가 있다. 심평원 보고서에서 대안으로 내세운 묶음지불제는, 건강 상태나 중재 과정의 연관성에 따라 일련의 서비스를 묶어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묶음지불제와 같은 대안적 지불제가 과연 현재 건강보험료 재정 악화, 의료의 질 개선 문제 등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우선 대안적 지불제를 시행한다고 해도 의료기관은 정해진 비용에서만 환자를 진료할 수밖에 없고, 결국 의료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 ACO의 경우에도 책정된 진료비 총액을 넘긴 조직은 손해를 보는 시스템으로 인해 보완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진료비 지불제도 및 수가체계를 바라보는 의료계의 관점은 정부의 관점과 다소 차이가 있다. 물론 현재의 우리나라 진료비 지불제도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에는 의료계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의료의 질 향상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는 포괄수가제 상황이 더욱 문제라는 것이다. 질병건당 가격이 정해져 있어, 의료 기기, 장비, 기구, 의약품 등 의료 서비스를 줄일수록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인해 최상의 서비스 제공 장벽이 높고, 신의료 및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성에 제약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평균값'을 기준으로 책정된 수가로 인해,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중증도 높은 질환은 의료인이 손해를 책임져야하는 구조 역시 의료 질 저하에 기여한다. 중증도가 낮은 환자를 볼 때 발생하는 이익으로 중증도가 높은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손해를 메꾸라는 것이 본래 취지이나, 중증도 스펙트럼이 넓어 결국 의료인의 손해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결국 이로 인해 의료소비자와 의료공급자(의사)의 선택권 문제, 수가 및 의사결정에 있어 의료공급자의 취약성이 부각되게 된다.

건강보험 재정 적자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불제도가 아닌 의료전달체계의 개편이 더 시급하다. 의료는 생명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정책의 방향성에 있어서도 경제적 논리보다 배분적 정의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 전국민에게 적용되는 만큼 수가제도를 보건의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와 충분한 숙의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현행 수가제도를 바탕으로 한 점진적인 데이터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비 통제를 목적으로 한 수가제도 개편 의지는 재고가 필요하다.

<의예과 2학년 정서화 학생기자>, <의예과 1학년 김지윤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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