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정책과 필수의료패키지는 필수 의료를 살릴 수 있을까?
의대증원정책과 필수의료패키지는 필수 의료를 살릴 수 있을까?
2024년 2월 1일, 보건복지부는 의료인력 확충과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의료 개혁의 일환으로 ‘필수의료패키지’를 발표했다. 이 글에서는 그 필수의료패키지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자 한다.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 ‘벼랑 끝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로 살리다’에 따르면 필수의료패키지란,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지역완결 의료전달체계)’,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를 핵심 과제로 삼아 필수 의료를 확충하겠다는 정책이다. 이는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 이행을 위해 필요조건으로서 의사 수 확대와 충분조건으로서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패키지 식 해법 마련을 위해 추진되었다. 그 중 첫번째 과제인 ‘의료인력 확충’의 세부 내용으로 2월 6일, 보건복지부에서는 2035년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고자 25학년도부터 입학정원을 2000명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 측에서는 반발과 함께 2000명 증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정부에게 요청했다. 전국 33개 의대 교수협의회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하여 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각하되었다. 5월 16일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된 의대정원증지 집행정지 항소심 또한 기각되었다. 의사단체 측 법률 대리인 이병철 변호사에 따르면 항소심 과정에서 법원은 4월 30일 정부에 2000명에 대한 과학적 증거자료를 제시하라 했으나 16일 결정문에서는 과학적 근거가 없어도 된다고 발표했다고 했다. 결국 17일 이에 대한 재항고가 있었으나 5월 24일 27년만에 1509명의 의대 증원이 확정되었다.
필수의료패키지와 1509명의 의대 정원은 결코 필수 의료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필수 의료 붕괴의 책임을 의사에게 돌리고 의사 수를 늘리면 해결될 것이라는 판단 하 매년 이처럼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근시안적인 판단이다. 법과 제도의 개선 및 의료 인프라의 확충을 통해 양질의 의료인력을 양성하고 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의료개혁으로 내세운 정책들은 이러한 환경 마련에 대한 해답 없이 단순히 수적으로 의료인력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의료정책이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예시로 ‘응급실 뺑뺑이’가 있다.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의사 부족이 아닌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경증환자들의 최종치료병원의 무분별한 이용을 막기 위해 병원 전 환자를 스크리닝 한다.
스크리닝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현장에서 증상 상태 활력 징후 등을 살핀 후 병원을 지정해서 이송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방의료원의 경우 검사 및 진료에 제약이 있어 야간에 발생한 환자들은 지역과 중증도에 무관하게 모두 지역대형병원의 응급실을 찾는 등 지역 대형 병원에 환자들이 집중된다. 중증의 경우 수가가 낮고 인력이 많이 투입되기에 대학병원의 부담이 큰데, 경증 환자의 집중 현상으로 제시간에 적절한 치료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의 대학병원을 향한 쏠림현상 역시 고질적인 문제이다. 서울 대학병원이 지방에서 오는 환자들까지 받게 되면서 응급실에서 포용 가능한 환자 수를 초과하여 병원 운영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한편 이러한 이유로 수도권 대학병원에 환자가 치중되면 또 다시 지역 2차 병원은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 가운데 정부는 현재 의료시스템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개입하여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번 정책들은 이에 대한 해답은 없는 듯 하다.
과연 정부가 현재 내세운 필수의료패키지와 같은 정책들은 기존에 없었을까? 이들은 성공적이었을까? 기존 ‘공중보건장학제도’는 지역인재전형 학생들의 지역 이탈을 막지 못했으며 목표로 하였던 지역의료 살리기에 실패했다. 이번 정책 중 하나인 지역필수의사제 역시 비슷한 결과를 낼 것이다. 단순히 의대 정원 수 늘리기가 아닌 지역 공공의료에서 의무적으로 일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것에 대한 법률적 검토와 정교한 정책 마련 등 기존과는 다른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필수의료패키지에서는 인턴제를 합리적인 기간으로 재설정하여 인턴제도를 1년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인턴을 저가 노동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 제도의 보완 없이는 의사를 소모품 및 저가 노동력 제공자로만 보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의사가 꼭 필요한 지역의 일차 의료를 담당할 역할의 의사가 필요한 것이라면, 저가 노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현 인턴제를 교육목적 수련 우선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의사들은 매순간 최선의 진료를 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필수과 중 하나인 소아청소년과를 예시로 들자면 10년전부터 원가보다도 낮은 수가로 인한 진료 포기, 환자 수 감소로 인한 적자로 상급 병원의 전문의 고용 포기, 의료 소송과 신고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회복을 꿈꾸며 자리를 지키는 의사들이 있다. 오래전부터 소아과 오픈런은 예견되어왔으며 이에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끊임없이 정부에게 해결책 마련을 요청하고, 급여체계를 포함한 정부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왔다. 소아 진료의 경우 성인과 달리 장시간 훈련한 다수 인력과 기술이 필요하나, 현재 정부가 정한 수가 체계는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번에 발표된 의대 증원은 1509명 정도는 증원이 되어야 필수과 의사가 충원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심어주면서 소아청소년과를 포함한 필수 의료 의사들의 희망과 자긍심을 잃게 만들었다. 또한,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의료소송으로 필수과 의사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한국 의사 1인당 연간 기소 건수는 일본의 265배, 영국의 895배에 이른다. 국내 의료과실 형벌화 현황을 보면 전체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건수 중 전문직이 22.7%를 차지하며 그 중 의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73.9%다. 특히 의료분쟁조정중재제도는 입법취지와 달리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법적 책임 증가 요인으로 필수과나 의사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진료과에서 장애, 사망으로 인한 의료 분쟁이 많다. 소송이 많은 미국의 경우에도 의료과실로 인한 형사책임을 의사에게 묻기 위해서는 의도성 및 고의성이 있는지, 무모하게 의료행위를 했는지 입증해내야 한다. 반면에, 한국의 의료행위는 애초에 법적으로 상해죄의 대상으로 전제가 되어 있어 의료행위가 실패하지 않았을 경우에만 책임을 면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의사가 치료행위를 했음에도 환자의 건강상태가 악화되면 상해 행위가 존재한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의료행위는 환자 회복 유무에 따른 결과 중심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이 필수의료패키지에 제시되었을까? 필수의료패키지에서 의료 소송 관련 정책을 살펴보면 필수 의료 업무상 발생한 과실치사상죄에 대한 감면을 언급한다. 이는 처벌이 된다는 전제 하에 형사처벌 부담을 완화시켜준다는 의미인데, 의료 소송에 대한 의사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아닌 의료행위가 범죄화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진의 법적 부담 완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여전히 없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실제로 대한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에서 전국 의대생 1만 467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이번 정책발표 후 실제 필수 의료에 지원하겠다는 학생은 70.12%에서 8.28%로 하락했다. 99.59%의 학생들이 이번 패키지에 반대의 의사를 표했다.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계의 복잡성과 유기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원인을 잘못 파악한 정책에 있다. 이는 이번 정책이 필수 의료 지원자 수가 줄어드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책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위 필수 의료에 대한 의지를 꺾는 정책이었음을 보여준다.
의대 증원 정책과 필수의료패키지는 빛 좋은 개살구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청문회 이후의 성명서를 통해 의대 정원은 근거 없이 추진된 잘못된 정책임을 주장했다. 결국 종합해보면 이번 정책은 뚜렷한 근거 자료나 계획이 없어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보여진다. 지역의료 살리기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의 각종 인력 및 의료 기관이 우선 확충되어야 하는데, 지역 인구가 줄어 환자도 없는 시점에서 이런 두리뭉술한 정책이 어떤 도움이 되며, 예산 책정에 대한 구체적 계획도 없다.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필수 의료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숫자 만으로 필수과의 의사가 부족하니 이에 맞게 의사 수를 늘리겠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동안 왜 필수의료과의 의사 수가 줄어들고 있었는지 의료시스템을 다시 살펴보고 이에 맞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학과1학년 홍서영 학생기자>